2019.12.13 星期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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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1-11 12:00
[회원들의 글] 조선방문기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326   추천 : 0  

                                                                                 

 

 

 

 

 

 

         심양동포조국방문단일동

                                    

심양시조선족제1중학교제76기 동창생들로 무어진 심양시동포조국방문단이 국경절을 맞이한후 조선을 방문하였다. 필업할때는 청춘남녀들이  사십삼년의 세월의 풍파에 시달려  이제는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섰다.

 

학창시절에  <꽃파는처녀>. <한간호원의 이야기>등  조선영화를 보면서  조선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깊었다. 중조량국은  사회주의나라들이며 한 강물 마시는 우호린방이다. 모안영을 비롯한 십여만의 중국인민지원군전사들이 공동의 원쑤 미제를 반대하는 전투에서 희생되여 영원히 조선땅에 잠 들고있다.  중한건교후 한국과 래왕하면서 조선에 대한 인상이 점차 흐려지고  희미해졌다. 한국텔레비를  보면서 조선의 소식을 듣는데 외곡이  많다. 그러나 자주와   존엄을 지키며  미국의 패권에 맞서는 조선의 담략에 경의를 보내며 한편으로는 가보고싶었는데 마침  조선공민인 권헌이 조선방문단을 조직하기에 함께 가게되였다.

 

우리는 심양에서 함께 기차를 타고  단동에 갔다. 동창생이라도 평시에 만나기가 힘들어 이렇게 만나니 무척 반갑다.  모두 47명인데 부부가 함께 가는 동창도 여러쌍 있다. 단동역은   조선관광으로 사람들이 붐빈다. 우리방문단의 기차표도 힘들게 샀는데 일부는 신의주에서  다른기차를 타고 가야한다고 한다. 국제렬차를 타고  압록강을 건느니 참 감개무량하다. 압록강다리의 란간에  전쟁때 기총사격에 뚫린 구멍들이 력력하다. 단교우에 관광객들이 우리에게 손저어 준다. 신의주에 도착하니 입국수속과 안전검사를 한다면서 모두  짐을 가지고 내리라한다.  듣던것과는 달리 기계로  검사하니 빠른데 여기  해관인원들의 태도도 근엄하다.  평북도 사업국 조애련안내가 우리 방문단을 책임지고 도와주었는데  상냥한  녀성이여서 허물없이 초면에 롱담도 하였다. 우리일부는 신의주에서 다른 기차를  타고 떠났다. 마음의 띠를 풀어놓고 차창넘어 흘러가는 풍경들을 흠상할수있는 국제렬차가 어찌하면 비행기보다 낫다. 외국려행을 하였어도  방문단으로  출국은 처음이다. 조선의 산과 들, 산기슭에 아담하게 가로세로 줄지어 지은 하얀 단층집들이 안겨온다.  벼이삭 물결치는 풍년든 벌에서 수확의 기쁨을 나누며 농민들이 벼가을을 하고있다.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니 제재로 고통받는다는 감이 없고 평온하고 여유있어보인다. 조선에 처음으로 가는 동창들이 대부분인데 차창넘어 스쳐가는 연도의 산과 들 마을들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도 하면서 평양에 도착하여 해방산호텔에 행장을 풀어놓고 먼저 온 동창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평양의 아침이다.   려관현관을 나서서 거리를 둘러보니 선전차에서  힘찬노래소리 들려온다. 거리에는 차들이 오가는데 도보로 출근하는 사람이 많다. 총총히 걸어가는 사람들속에 책을 보면서 학교로 가는 학생도 있고 뻐스에서 책을 보는 사람도 있다.   해방산호텔은 평양시 중심에 위치하고있어 출입도 편리하고 방도 깨끗하고 음식도 입에 맞다.

 

오늘은 금강산으로 간다고한다. 뻐스 두대를 타고 가는데 어제 만났던 한진혁,강은정안내가 동행하였다. 평양도  차들이 많은데 제재를 받는다는 기색이 전혀없다. 강은정안내가 거리의 아빠트들을 가리키며  미래과학자거리라고 소개하면서 과학자와 교육자들이 살고있다고 하는데  건물들이 높고 멋들어졌다. 조선에는 과학과 교육을 중시하는것같다.

평양시가 록화가 잘된것 같다.시민들의 옷차림을 보면 심양과 비슷하다.

 

금강산은 조선동해안중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원산을 거쳐간다고 한다.  원산으로 가는 이 길은 70년대에 건설한 고속도로라는데  세멘트길이여서인지 뻐스가 좀 들춘다. 날씨가 흐리더니 보슬비가 내린다. 산도 푸르고 가로수도 푸른데 언덕에서 감자 캐는 녀인들의 적삼이 젖는다. 도중에 신평금강(고속도로 복무구역)에서 잠간 쉬였는데 맑은 저수지에   물고기들이 헤염쳐 놀고 주위는 산들로 막혔는데 경치가 괜찮다. 산을 지나 강을 건너  한 동굴을 지나는데 그 길이가 사천백여메터라고 한다. 도로에서 연기를 피우며 달리는 목탄차를 보았다. 제재로 석유수입을 못하여 저런차를 쓴다고 생각하면서 눈여겨보았다. 차우의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웃는다. 수다스러운 한동창이 조선에서 핵을 포기하여야 제재가 풀리고  경제가 발전할수있다고 중얼거리니 뒤에 앉은 리은룡이 핵없는 나라들이 다 경제가 발전하였는가고 문책면서 핵무기가 있어야 평화가 있다면서  조선의 평화가 중국과 로씨야에도 중요한만큼  중조 조로관계가 개선되면서 제재가 무효될것이다.   지금까지 핵을 가진 나라들 사이에 전쟁이 없었다. 조미대항에서 조선이 승리할것이다라고 론리있게 반박하는데 조선정세에 관심이 있는것같다.

 

  항구도시 원산에 도착하였다. 동해바다가에 서있는 동명호텔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는데 음식이 풍성하여 녀성들이 사진을 찍으며 복무원에게 해물이름들을 물었다.  창문열고 바라보니 비내리는 하늘과 바다를 분간할수없다. 파도치는  바다가에 정박하고있는 작은 배들이 흔들거린다.  뜰안에 심은 감나무에 노란감들이 많이도 달린것이 인상적이다. 식사후 금강산으로 출발하였다. 안내가 금강산을 소개하였다. 금강산은 동서40키로메터에 남북60키로메로 만이천봉우리라고 한다. 금강산은 외금강,내금강,해금강으로 나뉘는데 우리는 기일이 촉박하여 제일 좋은곳만 골라구경한다고 한다. 이 고장에 감이 잘되는지  집집마다 누런 감들이 앞뜰에 뒤뜰에 가지가 휘여지게 달렸는데 참 인상적이다.   녹쓸은 기차길이 남으로 뻗었는데 북남관계가 악화된줄을 모르고 말없이 남에서 올 손님들을 기다리고있는것을 보니 마음이 괴롭다.  뻐스가 파도 사나운  바다가를 따라  굽이도는데 지명을 물어보니 고성항이란다. 우리는 외금강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은후 금강산온천에서 피로를 풀었다.

 

금강산의 아침이다.  호텔 앞의 옥류동면옥을 둘러보고 현대에서 지었다는 건물들을 돌아보았다.

 

아침식사후 구룡폭포를 향하는 등산길에 오르는데 아침안개 바람에 밀려 흘러가니  찬란한 해살이 비쳐온다.푸른 산등성이들이 서서히 자태를 드러내는데 긴세월의 비바람에 씻겼는가 산들이 기이하다.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리는 시내물을 거슬러 산을 돌고 골을 지나니 신계천의 목란관이 보인다. 목란관 돌아서 록음짙은 수림대, 양지대를 건너 삼록수에서 사진들을 찍고좀더 오르니 집채같은 큰 바위두개가  길을 막는다. 바위틈이 생겼으니 이틈이 바로 금강문이다.금강문을 빠져 나와  사방의 경치를 보면서 한참 오르니 옥류동에 이르렀다. 옥류동골안은 경치가 수려하여 이를데가 없었으니 층암절벽 병풍인가  청천에 백운이 떠돌고 청산에 록수가 흐른다.  경치가 너무좋아 사방을 쳐다보면서 구룡연계곡을 따라  우리는 오르고 맑다못해 푸른물은  사품치며 흐름면서 폭포와 담소를 이루었다. 비에 젖은 절벽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돌계단에 넘친다. 옥류동을 지나니 련주담과 련주폭포가 나타나고 비봉폭포가 산고개에서  떨어지는것이 마치 하다가 바람에 하늘에서 날리는것같다. 힘들어서 쉬였다가 다시 가파른 비탈길에 올라  이름난 구룡폭포를 한눈에 볼수있는 정각에 올라서니 벌써 먼저 오른 동창들이 경치에 취하여 사진들을 찍으며 웃으며 떠든다. 눈길들어 바라보니 산마루에서 떨러지는 구룡폭포가 소리치며 물안개를 날린다.  산도좋고 물도맑아 눈가는 데마다 절승이다.  동창들이 사진을 찍고 좀 쉬였다가 정자에서 내려와 상팔담으로  가려고 구룡연계곡의 다리를 건느는데 안내가 시간이 없다며 길을 막기에 부득이 내려갔다. 우리는 목란관에서 점심을 먹고  옆에 있는 기념품상점에서 좋은 산꿀을 샀다.

 

해금강으로 갔다. 해금강의 바다경치는 과연 장관이다. 동해의 만경창파에 가슴이 설레이고 얼굴을 스치는 해풍에 기분도 상쾌하다.   밀려드는 파도에 산이 깎기여 절경을 이루고  바다에 뿌려진 바위에 파도가 부닥치니 백옥이 부서지는듯 절경에 황홀하여 청춘이 약동하는가 날아서 찍고   누워서 찍고 돌우에 서서 찍는데 파도에  바지가 젖어도 개의치 않았다. 돌섬에도 소나무가 푸르싱싱  자라니 절말 해금강은 명승이여서 떠나기가 싫다  금강산은 산만이 좋은게 아니고 바다도 좋으니 정말 절승경개라고 할까 이런것을 두고 귀신도끼로 만든 자연의 조화라고할가.  안내가 여러번 불러서야 우리는 해금강을 떠났다.

 

.원산으로 올라와  동명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마식령호텔에서 밤을 보냈다.  마식령호텔시설은 아주 고급이였다. 호텔베란다에서 쳐다보니 푸른산에 스키도로가 여러개 있는데 아침안개가 산봉우리를 맴돌고있는데 겨울에만 손님들이 오니 경제적으로 수지가 맞는지 의문이다.

 

 아침을 먹고 평양으로 향하였다. 맑은 가을 산천도 좋은데 우리는 달리는 뻐스에서 안내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면서 평양에서 유명한 옥류관에 도착하였다. 조선식건물의 옥류관은 웅장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는 곧바로 들어가 이름난 평양랭면을 먹었다.  주체사상탑에 올랐다.   경탄의 환성을 올렸다. 웅장하고 화려한 평양시가  한눈에 안겨온다. 녀성안내가 기념비적 건축물들을 설명하는데 정말 대단하다. 전쟁때 평양은 폭격으로 혹심한 피해를 받아 참새마저 없어졌다고한다. 김성만이 십년전에 왔던때보다 많이 변하였다고 감탄하였다. 미국과 그 주구들의 가증되는 압살속에서도 끄덕없이 해마다 대기념비적창조물들을 일떠세우는 조선의 기세를 꺾을 자가 없다. 대동강 모란봉도 아름답지만 려명거리 미래과학자거리도 멋이있다. 건물과 자연이 잘 어울려 마치 공원속의 도시다. 탑아래에서 기념품을 파는  엄향미녀성이 권헌을 잘아는지 서로  반기며 그가 산 책에 싸인을 하고 사진까지 찍었다.

 

지하철도를 참관하였다ㅣ. 얼마나 깊은지 끝이 보이지않는데 홀에  들어서 보니 멋지게 건설하여서 마치 지하궁전같다. 승객도 많다. 백여메터 땅속이라 하니 전쟁용인듯 싶다. 직접 한 정거장 타보았는데 70년대에 건설한 것이라하니 대단하다. 개선문을 돌아보았다. 웅위롭고 정중한데 빠리의 개선문보다 10메터 더 높다고한다. 안내가 말이 주체사상탑이 세계에서 제일높은 돌탑이고 지하철도는 세계에서 제일 깊고 개선문도 제일크다고 한다.

 

우리는 해동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노래와 춤으로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모란기념품상점과 월향전시관에서  물건들을 샀다.  

 

이날저녁 우리는 조선의 이름난 대형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하였다. 대동강의 릉라도에 세운  5.1경기장의 수용능력이  15만명이라하니 아주 크다. 많은 사람들이 연출하는데 화려하고 우아하여 넋을 잃을 지경이다. 우리 조선민족의 무용예술은 정말 세상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경기장을 환히 빛추는 불빛도 현란하지만  뒤의 배경도 일치하고 빠르기가 바뀐다. 추억에 영원히 남을 장면들이다.   누구도 이렇게 규률이 강하고 조직력이 강한 인민을 정복할수 없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조선에서 주요계기마다 큰 행사를 거행하는  김일성광장을 돌아보았다. 인민대학습당이 거연히 솟아있고 량옆에는 박물관이다.열병식때에  녀성군인들의 보무당당한 행진이 눈앞에 력력히 떠오른다. 대동강변에서 동영상과  사진을 남기면서 이번방문의 마지막시간을 보냈다.  평양역에서 우리는 해외동포사업국일군들,  안내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권헌단장과 리광욱학생회장이 이번 방문을 도와준 원호에게 감사의 인사를 부탁하니 자주오시라고 인사한다. 안내들도 또 오시라면서 그때에는 묘향산도 가보자고 한다. 우리가 이번에 조국에서 체류한 날은 길지않지만 많은것을 보고느꼈다.  추억에 오래오래 남을 방문이다.우리는 같은 조선민족이다. 비록 국적은 달라도 민족은 하나다.ㅣ우리는 조선에 형제의 정과 민족의 감정을 가지고있다. 조선아 잘되여라.   조국이여 부디 번영부강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