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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27 12:15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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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최수봉 제1부의장

 

 

중남지구협회 백경헌회장 부인(리화숙, 1960년생)과 베이징시 서인석지부장 어머님(김경자, 1923년생)의 병세가 극히 위태롭다는 소식을 받고 재중조선인총련합회에서는 베이징에 가서 병문안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는 김연주국장과 함께 3월 23일 베이징으로  떠났다.

베이징역전에 도착하자 백경헌회장과 서인석지부장이 베이징역전에서 우리들을 마중하였다.

우리는 서인석지부장의 승용차에 앉아 먼저 서인석지부장의 어머님이 입원하고있는 베이징경과간태병원(北京京科肝泰医院)으로 향하였다.

병원은 베이징 시교 풍대구역(丰台区)에 자리잡고있는데 병원규모가 크지 않지만 아담하게 잘 꾸려져있었고 병원의 의료진들의 봉사태도 역시 다른 병원들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우리가 서인석지부장의 어머님이 입원한 병실로 들어서니 한호실에서 다른 환자를 간호하는 녀인이 서인석지부장의 어머님을 돌보고있었다. 서인석지부장은 너무도 고마워 그 녀인에게 거듭 고맙다고 인사하였다.

서인석지부장은 어머님의 침대옆으로 다가가서 어머님의 손을 잡고 어머님을 부르며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일군들이 병문안 왔다고 말하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서인석지부장은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금년 95살 고령인 어머님은 몇년전부터 치매에 걸려 곁에 간호하는  사람이 없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되자 형제들이 모여서 어머님을 어떻게 간호하겠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토론들이 있었다. 하지만 긴병에 효자가 없듯이 선뜻   나서는 형제들이 하나도 없게 되자 어머님을 모시는 무거운 짐이 서인석지부장의 두 어깨에 놓이게 되였다.

이처럼 몇년동안 서인석지부장은 큰 가정부담을 안고 한편으로는 어머님께   효성을 다해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백경헌회장의 사업을 받들어 베이징시지부사업을 손색없이 잘해나가고 있을뿐아니라 베이징을 경유하거나 베이징시에 오는 손님들이 드나들때마다 승용차를 몰고 백경헌회장과 함께 손님안내사업을 전적으로 맡아하였다.

어머님이 2017년부터 병세가 위태롭게 되자 집에서 병원으로  옮기게 되면서 병원비용이 1달에 1만 2천여원을 지불하여야 하였다. 서인석지부장은 부인과 함께 어머님의 병원치료비를 전부 부담하였는가 하면 비록 전문간호인원은 있어도 하루에 적어도 한번씩은 꼭 병원에 가서 어머님의 정황을 료해하면서 1년 5개월동안 어머님께 효성을 다하였다. 그리하여 서인석지부장의 어머님은 금년 4월 아들 서인석의 효성을 듬뿍 받아안고 편안하게 생을 마무리짓게 되였다.

우리 일행은 베이징경과간태병원에서 나와 백경헌회장의 부인이 입원한 베이징중의약대학동방병원(北京中医药大学东方医院)으로 향하였다. 이 병원은 대단히 큰 병원이여서 입원환자들이 정말로 많았다. 백경헌회장의 부인은 복도에 침대를 놓고 치료받고있었다. 호흡보조기의 덕분으로 숨을 겨우 쉴수 있는 상황이라   환자가 대단히 불편한 표정이지만 정신은 똑똑해 보이였다. 우리가 위로의 말을 건네보았지만 말은 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눈물만 흘리고있는것이였다.

리화숙녀사(흑룡강성 오상시 사람)는 1982년도 최란숙선생의 소개로 백경헌회장과 인연을 맺게 되였다. 하지만 처녀시절부터 페가 좋지 못한 백경헌회장의 부인은 1984년도 발열현상이 지속되여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를 하였는데 1/3 폐가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꼭 해야한다고 권고하였다. 백경헌회장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거액의 수술비 4만여원을 준비하겠으니 수술하자고 부인에게 말하였다.

동생 리화숙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베이징으로 달려온 언니는 수술을 하면 사람이 위험하니 흑룡강성 오상시에 가서 보수치료를 하자고 하면서 동생을 오상시에로 데리고 갔다.

백경헌회장은 부인을 흑룡강성으로 보낸후 부인의 병이 완쾌되기만을 기대하고있었다.

백경헌부인은 1년 남짓한 동안 고향에서 중약으로 보수치료를 받았지만 폐가 조금도 호전되지는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되였다. 언니는 동생을 다시 베이징에  데리고 왔다.

백경헌회장은 두말없이 부인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검진결과 병원에서는 역시 수술하라는것이였다. 그리하여 수술하였는데 2/3의 폐를 잘라냈다. 폐를 거의 다 잘라낸 부인은 결국 로동능력을 상실한 장기환자가 되였다.

그때로부터 시작하여 2018년 4월 부인이 세상을 떠난날까지 장장 30여년동안 백경헌회장은 장사를 하여 번 돈을 전부 부인의 병치료에 써가면서 부인을 정성껏 돌보아주었다. 그런가하면 가정의 부담이 그리도 큰 백경헌회장은  몇십년동안 베이징시 및 중남지구협회 공민사업을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모범적으로 한 훌륭한 일군으로 일해왔다.

나는 김연주국장과 함께 남모르는 애달픔을 이겨내며 남편과 자식의 도리를 다해온 백경헌회장과 서인석지부장을 더욱 우러러 보게 되였으며 그들과 같은 사람들을 놓고 훌륭한 남편, 효자로 부르지 않겠는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