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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5-25 17:23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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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수봉 총련합회 제 1부의장 

 

5월 10일 나는 동주봉사무국장과 함께 칠대하시에 대한 공민실태료해사업을 진행하기 위하여 심양에서 동북쪽으로 달리는 고속렬차에 몸을 실었다.

 

코로나영향으로 오래동안 먼길을 떠나지 않아서인지 마음이 한결 상쾌하였다.

 

장춘시, 할빈시, 목단강시 등 13개 시, 현을 경과하며 질풍같이 내달리는 고속렬차는 1000여 키로메터 구간을 여섯시간내에 목적지에 도착하며 중국 고속렬차 전성기를 뽐내는 듯 싶었다.

 

시속 300키로 속도로 달리고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비옥한 농경지들에 강냉이 파종은 이미 끝마쳤고 논밭들에는 모내기 준비작업이 한창이였다.

 

이전에는 농망계절이 되면 밭머리에 농작물에 덮는 비닐막이 사방에 날리고 농촌마을들도 지저분한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하지만 최근년에 들어와 중국 당과 정부에서는 해다마   문명촌건설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므로써 농촌마을은 일신되였을뿐아니라 농민들의 문명의식도 전변되면서 매개 가정들에 분배된 밭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우게 보이였다.

 

렬차는 어느덧 칠대하시서역에 도착하였다. 현대적 미감에 맞게 건설된 이 역전은 칠대하시와 발리현 승객들이 다 덕을 볼수 있게 칠대하시와 발리현 중간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발리현은 흑룡강성내에서 조선족학교 교학질이 높아 소문난 현성이며 또한 동주봉사무국장의 고향이다. 동주봉사무국장의 동창생이 차를 몰고 역전에서 우리를 마중하였다. 우리는 호텔에 짐을 풀고 직접 발리현 장정애지부장의 집으로 갔다. 장정애지부장이 살고 있는 집은 발리현에서 제일 높은 고층건물이라고 한다. 장정애지부장은 갑자기 우리를 보니 너무도 뜻밖이여서인지 한참동안이나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우리가 그의 침대앞에 다가가 손을 꼭 잡고 건강상황을 료해하였다. 그때에야 장정애지부장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표정을 내며 우리 둘의 손을 더 꽉 잡고 거듭 고맙다고 머리를 끄떡이는것이였다. 우리는 장정애지부장이 뇌출혈로 생명이 위태롭다는 소식을 받고도 코로나때문에 병문안도 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을 이야기 하면서 우리가 최은복의장동지의 특별 위임을 받고 이렇게 찾아왔다고 하였다. 장정애지부장은 또다시 고맙다는 형용을 하였다. 비록 코로나시기에 발병하여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수술하고 치료를 받으며 집에서 침대생활을 하고 있고 언어표달에 곤난을 겪고 있지만 정신상태와 얼굴혈색은 참 좋아보였다.

 

남편 김형렬선생은 조선족마을 조양촌에서 근 20년동안 부기사업을 해온 촌 간부였다. 마음씨도 곱고 지식도 있어보였다. 지난시기 김형렬선생은 자기맡은 촌간부사업이 바쁨에도 불구하고 안해의 사업을 협조하여 발리현 조선공민들속에서 제기되는 일들을 많이 도와준 고마운 공민가족이고 부인을 지극히 사랑하는 훌륭한 남편이기도 하다. 또한 자기 가정을 떠나 3년 넘도록 어머니의 곁을 지키면서 하루 3끼 어머니가 즐기는 음식들을 챙겨주고 대소변을 받아내면서 효도하는 맏딸이 있어 장정애지부장은 매우 행복해보이였다.

 

우리는 장정애지부장과 회포를 나누면서 총련합회의 사업정형도 소개해주고 앞으로 해야할 일들, 그리고 발리현 공민들의 실태도 료해하였다.

 

이튼날 오전 볼일이 있어 청도에서 화남현에 온 칠대하시 김수균지부장은 딸의 차에 앉아 발리현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칠대하시로 떠났다.

 

칠대하는 석탄으로 살고 석탄으로 흥하는 신흥공업도시이다. 1958년부터 개발건설하고 1983년도에 성할시(省辖市)로 승급하였으며 세개구(桃山区, 新兴区, 茄子河区)에 1현(勃利县), 1장(金沙农场), 1개 성급경제가발구가 있고 총인구는 100여만이다. 석탄도시여서 원래는 도로에서 차가 달리면 뒤차가 앞차를 보지못할 정도로 검은 석탄먼지가 날리여 공기가 좋지 않다고 소문난 도시였지만 지금은 도로 량옆에 자정향나무를 비롯하여 보기 좋은 가로수들을 많이 심고 도로에 떨어진 석탄먼지를 제거하는 청소차가 자주 다니고 있어 도시는 매우 깨끗한 감이 들었다.

 

또한 칠대하에는 석탄, 금, 흑연(石墨),대리석, 벤토나이트를 비롯하여10여종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지고 있고 원 길동성위(吉东省委), 항일련군 제2로군 본부가 자리잡고 있는 동북항일련군 제일 활력있고 시간이 제일 길며 면적이 제일 큰 항일근거지이였으며  “국가중점고수준체육후비인재기지”이고 장걸, 양양, 왕몽, 범가흔 등10명이 세계빙상스케이트경기 1등상, 칠대하시 선수들이 세계급금메달 총 169매를 수여받았으며 전국유일동계단일항목국가훈련기지이므로 사람들은 흔히 칠대하시를 빙성(冰城)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는 어느새 칠대하시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칠대하시 김금자공민이 지정한 곳에 도착하니 칠대하시 공민 다섯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공민들의 실태를 료해하였다. 칠대하시에는 우리 공민 총 6명이 살고 있다. 공민들이 전부 사회보장을 받고 있는데 칠대하시 사회보장국에서는 특수한 정황을 특수하게 처리하는 방식으로 령활성있게 지방은행통장으로 공민들의 사회보장을 제때에 받을수 있게 해주었다.

 

김수균지부장은 올해 89살인데 청도시 딸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번에 김수균지부장이 볼일이 있어 딸과 함께 화남현에 왔으므로 우리와 만나게 된것이다. 그의 건강상태는 좋아 보였다. 하지만 나이가 많으므로 다리를 잘 쓰지 못해 딸이 밀차로 모시고 다니고 있다. 우리는 김수균지부장의 현 실정을 고려하여 칠대하시 새로운 책임자를 추천해보라고 공민들에게 말하였다. 김수균지부장은 물론 기타 공민들도 이구동성으로 김금자공민을 책임자로 추천하였다. 김금자공민은 1953년생인데 성격이 활달해보이고 칠대하시 교통국, 광무국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공민이다. 김정자공민은 공민들이 자기를 이렇게 믿는데 공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보겠다고 쾌히 응해나섰다.  

 

우리는 체류기간 발리현 공안국출입경관리대대와 칠대하시 공안국출입경관리국에 찾아가 우리가 장악한 공민명단과 출입경에서 장악한 공민명단과 주소, 전화번호를 재확인해보았다. 출입경관리부문에서도 외국인들을 관리하는 의무가 있으므로 총련합회에서 지방 조선공민들의 등록사업을 진행하는데 적극 협조해나섰다.

 

우리는 발리현과 칠대하시에 대한 공민실태료해사업을 원만히 끝마치고 년로한 김수균지부장을 모시고 그가 잠시 체류하고 있는 화남현까지 모셔다 주고 이튼날 화남역에서 김수균지부장과 작별하고 심양으로 향하는 고속렬차에 몸을 실었다. 김수균지부장이 밀차에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아쉬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가 김수균지부장과 같은 고령 책임자들을 언제 다시 만날수 있겠는가 하는 섭섭한 심정을 감출수 없었다.  

 

김수균지부장은 1935년생이며 전쟁로병이다. 그는 칠대하시 광무국에서 전동기 전문가이다. 한평생 자기 직장에서 모범적으로 일해왔으며 칠대하시 공민들을 위해 마음을 많이 쓴 로지부장이다. 지금 년세가 많아 몸은 비록 불편하지만 칠대하시 도산광1중영어교원으로 일하다가 퇴직한 딸과 칠대하시 교통국에서 퇴직한 사위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김수균지부장은 자기에게 효도하는 딸과 사위가 옆에 있어 만년생활이 아주 다채롭고 행복한 느낌이였다. 김수균지부장은 자기는 지금 로간부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며 우리에게 딸과 사위를  많이 자랑하였다.

 

그렇다.

 

김수균지부장과 장정애지부장과 같이 마음속에 조국을 담고 공민사업에 한생을 다 바친 그들에게 총련합회에서 더 많은것을 부여해주지 못하는것이 많이 안타깝지만 그들에게 효도하는 자식들이 있어 만년생활을 누리는 그들의 행복넘친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조여든 마음이 좀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