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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3-17 13:54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2,535   추천 : 0  

 

왜 우리는 언론을 불신하게 되었나. 팩트와 루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한국의 뉴스, ‘좋아요’와 클릭 수에 목매는 한국의 미디어와 관련한 나의 다섯 가지 경험들.

 

솔직히 말해보자. 한국의 언론은 형편없다! 뉴스를 아무리 읽어도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 뉴스인지 도무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나는 프리랜스 저널리스트로서, 사실에 기반한 기사를 쓰기 위해 정말이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 때문에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알고 있으며 나 역시 아직 열심히 배우고 있는 중이다. (나는 언론학과를 졸업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한국 미디어는 정도를 넘어섰다. 독자를 기만한다고밖에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특히 이 다섯 가지 문제에서는 참담한 수준이다. 팩트 체크의 누락, 사실의 과장, 표절, 사실을 가장한 추측성 기사, 언론 윤리의 부재. 매일 뉴스를 읽을 때마다 적어도 이 중 하나의 문제와 맞닥뜨린다. 소위 말하는 ‘잘 알려진’ ‘평이 좋은’ ‘믿을 만한’ 온라인 매체에서도 말이다. 지금부터 공유하는 이 다섯 가지 예시는 모두 직접 보거나 경험한 것이고, 당연히 100% 실화다. 

 

 

 

팩트 체크란 없다 

 

얼마나 부정확한 팩트들이 넘쳐나는지! 기사 속에서 부정확한 인용구나 숫자들을 발견하는 건 굉장히 흔한 일이다. 정부나 기업이 주는 보도자료에 대한 의심 자체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000의 통계에 따르면’ ‘해외 유명 언론 000에 따르면’ 같은 구절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실제 000이나 해당 유명 언론사의 웹사이트에 한 번만 방문해도 그런 숫자는 존재하지도 않으며, 애초에 보도자료의 해석이 잘못된 것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식이다. 어찌나 이런 경우가 많은지, 가끔 보도자료의 오역이 의도적인 것인지 아닌지 궁금해질 정도다. 그리고 그런 실수(?)가 넘치는 보도자료를 대하는 언론의 자세는? 그냥 ‘복붙(복제, 붙여넣기)’이다. 팩트 체크는 없다. 

  

팩트 부풀리기 

 

과거 홍보 회사에서 일했을 때, 당시 고객이었던 해외 대기업의 요청으로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연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의 투자 상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 해외 대기업의 임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음. 두고 봐야죠. 이상적으로는 꽤 많은 액수를 투자하고 싶지만....” 하지만 다음날 그 질문을 한 기자가 소속된 신문의 헤드라인은, 헉, “00회사: 한국에 00원 투자하겠다”였다. 당연하게도 그 임원은 미친 듯이 화를 냈다.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습니까? 나는 정확한 금액을 제시한 적이 없어요!” 

  

나는 그 기자에게 무슨 근거로 금액을 적었냐고 물었다. 마치 정말 그 임원이 말한 것처럼, 말 따옴표까지 붙여가면서 말이다. 돌아온 대답은 더 기가 막혔다. 구체적인 숫자를 언급하는 게 ‘더 좋아 보였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나는 수정을 요구했고 물론 그 기자는 즉시 금액 부분을 삭제했다. 수정은 됐지만, 정정 멘트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보통 (믿을 만한) 글로벌 언론사에서 실수했을 경우 ‘이러이러한 연유로 수정한다’는 말을 기사 하단에 남기곤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에서 기사 내용을 바꾸기란 이렇게나 쉽다. 물론 실수에 대한 사과나 수정 이유에 대한 설명 따위는 그 '수정'의 절차에 포함되지 않는다. 

 

 

 

Ctrl C+Ctrl V 

 

언젠가 한 칼럼니스트가 꽤 잘 알려진 한국의 영어신문에 기고할 자신의 칼럼을 교정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가 보내온 초안은 정말이지 완벽했다. 이미 그의 영어가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좀 의아할 정도였다. 설마. 혹시? 몇 개의 문장을 구글에 검색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몇 개의 웹사이트에서 정확히 같은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그냥 몇몇 기사에서 문장들을 ‘복붙’해 짜깁기한 것이다! 나는 표절한 글을 교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고, 그는 몹시 불쾌해했다. (왜죠?) 어쨌거나 그 ‘복붙’ 칼럼은 그대로 출판됐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온라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설의 냄새가 난다 

 

OO 씨에 따르면, 전문가에 따르면, 업계에 따르면, 소식통에 따르면 (심지어 SNS/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등은 아주 한국 미디어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서양의 언론에서는 주제가 워낙 민감해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심각할 파장을 초래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익명으로 남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주제를 막론하고 모든 취재원의 익명성을 보장한다. 바꿔 말하면 이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도 어렵고 사실을 꾸며내기 매우 쉬운 환경이라는 얘기다. 

 

 

 

언론 윤리의 부재 

 

지난해 한 유명인이 마약 투약 혐의를 받은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언론이 주목한 건 단순히 그의 마약 투약 혐의만이 아니었다. 그의 성 정체성 역시 화두에 올랐다. 동성애 ‘혐의’라는 표현까지 사용해 가면서, 그의 성 정체성과 마약 투약 혐의를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을 보고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보도 사실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개인의 사생활은 보호받게 되어 있는 것이 국내외를 막론한 보도 준칙 아닌가? (그리고 상식 아닌가?) 대부분의 해외 유명 언론들이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하는 부분이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그런 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몇 개 안 되는 예이지만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를 100개는 더 거뜬히 털어놓을 수 있다. 아마 당신도 비슷한 경험이 꽤 있을 것이다.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훌륭한 언론인들까지 깎아내리게 할 만큼 이런 ‘쓰레기’ 같은 기사가 넘쳐난다는 건 몹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미디어의 역할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타당한 의견을 갖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와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예시에서 알 수 있듯, 이런 환경에서 지금 미디어는 본래의 역할의 정반대 일들을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지난 얼마 간의 코로나바이러스의 위기 속에서 이 ‘미디어의 역할’은 더욱 돋보였다. 너무 많은 소문과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사실들, 잘못된 정보들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번져나가는 상황 속에서 수많은 언론은 그저 사회적 불안감, 패닉, 좌절, 무질서를 야기하는 이 모든 것들을 무분별하게 ‘팩트’라고 반복 보도할 뿐이었다. 결국 미디어의 목적이란 그저 더욱 많은 클릭과 뷰, 좋아요의 개수를 위한 것이 전부인가 싶을 정도로, 거의 폭격에 가까운 모양새였다. 누구나 미디어가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팩트가 될 수 있는 지금, 도대체 뭐가 진짜란 말인가?   월드조선족 黑龙江新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