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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3-01 08:45
고려왕궁터-만월대유적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338   추천 : 0  

만월대는 고려성립직후인 919년에 세워진것으로 개성시 송악동 송악산남쪽기슭에 있는 고려의 왕궁터이다.

여기에는 원래 태봉국의 수도성인 발어참성이 있었는데 그것을 리용하였다.

궁성은 약 39만㎡의 넓은 면적에 수많이 들어앉은 건물들로 이루어져있다.

지금 만월대라 할 때에는 왕궁터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되지만 원래는 회경전(왕이 정사를 하던 곳)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궁전이 있던 길이 약 445m, 너비 약 150m의 대지를 부르는 이름으로 되여있었다. 왕궁의 둘레를 쌓은 성벽은 석비레와 진흙을 엇바꾸어 여러겹으로 다져쌓은것으로서 현재 동, 서, 북쪽벽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만월대를 중심으로 한 왕궁의 전체 구조는 다음과 같았다.

왕궁정전의 정남문은 2층루각의 승평문이였고 승평문에 들어서면 만월대 남쪽으로 흐르는 개울이 있다. 거기에는 돌다리가 있고 또 개울을 남북으로 낀 구정이 있었다. 구정을 지나면 신봉문이 있었고 그 동쪽에는 춘덕문이 있어 춘궁(동궁-왕의 세자가 있던 곳)으로 통하고 서쪽에는 태초문이 있어 왕이 있던 궁으로 통하게 되여있었다. 지금 신봉문터에는 주추돌만이 남아있다.

신봉문을 지나면 창합문이 있었는데 이 문의 주추돌이 지금 남아있다. 창합문에 들어서면 그 전면에 너비 49m, 높이 약 6. 65m되는 경사지에 4개의 큰 돌계단이 있는데 그 높이는 7. 5m이며 계단수는 33개이다. 계단우에 왕궁의 정전인 회경전이 있었다.

회경전은 축대우에 있는 동서 59. 4m, 남북 120. 6m의 터전에 회랑을 두르고 그 안뜰 북쪽에 세운 건물로서 앞면 9간, 옆면 4간인 만월대에서 가장 큰 건물이였다. 회경전은 붉은 옻칠을 하고 금색찬연한 구리꽃을 장식하였다. 지금은 회경전의 삼문(한채의 건물가운데 큰 문이 있고 량옆에 작은 문이 있는 그런 형식의 문)터와 정전인 회경전터 그리고 동서회랑채의 주추돌이 정연하게 남아있을뿐이다. 회경전터뒤에는 장화전, 원덕전, 장령전, 연영전, 자화전의 순서로 여러 궁궐건물들이 있어 넓은 궁성부지에 자리잡은 건축군의 중심을 이루고있었다. 이밖에 장령전축대아래에도 왕이 거처하던 건덕전을 비롯한 많은 건물들이 처마를 잇대고있었다.

궁성의 북쪽언덕은 아름다운 화원과 정자들로 가득차있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정자터는 정자가 여러가지 기교를 부린 건물이였다는것을 보여준다. 만월대유적은 왕궁의 구성과 궁전의 짜임새에서 고구려적성격을 진하게 띠고있다. 남북중심축을 형성하고 그 선상에 기본궁전을 배치하고 서쪽에 서궁, 동쪽에 동궁을 배치한것, 궁전평면이 고구려안학궁과 같이 +형으로 된것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만월대는 1361년 외래침략자들이 침입하였을 때 불타버린 후 다시 복구되지 못하였다.

만월대유적은 고려사연구와 고려의 건축술을 연구하는데서 매우 귀중한 유적으로 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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