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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5-23 09:48
[북녘소식] 천지개벽의 새 력사 전하는 락원의 강-보통강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251   추천 : 0  

조국번영의 길에 쌓아올리신 불멸의 업적 천만년 빛나리

천지개벽의 새 력사 전하는 락원의 강-보통강


온 나라가 당 제7차대회결정관철을 위한 벅찬 투쟁으로 불도가니마냥 끓어번지고있다. 보통의 상식과 기성의 관례대로 하면 50년 지어 100년이 걸릴수도 있는 강성국가건설의 전략적과제들을 새로운 조선속도인 만리마속도로 최단기간내에 관철하고야말 불같은 의지가 천만의 심장에서 세차게 높뛰고있다.

자기 세대가 책임진 혁명임무를 어떤 값비싼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무조건 완수해온것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령도밑에 우리 인민이 떨쳐온 긍지높은 전통이며 기질이다.

우리는 그것을 위대한 수령님께서 새 조선의 건국의 첫삽을 뜨신 보통강개수공사기념탑에서 더욱 후덥게 느낀다.

강산을 길들이는 천만군민의 비상한 정신과 힘의 밑뿌리도 바로 70년전 여기 보통강반에서 시작된것이 아니였던가.

지금도 보통강개수공사기념탑이 솟아있는 봉화산에 올라 천지개벽된 평양시의 웅장화려한 모습을 바라보느라면 위대한수령님의 호소를 높이 받들고 해방후 대자연개조의 첫 사업으로 진행한 보통강개수공사가 오늘까지의 70년력사에 얼마나 희한한 전변을 가져왔는가 하는 생각에 가슴은 뿌듯해진다.

보통강은 지난날 일제의 강점하에서 우리 인민이 겪어온 모든 불행과 고통을 그대로 보여주는 하나의 축소판이였다.

무섭게 범람하는 물우에 비껴흐른 원한의 눈물은 그 얼마였던가.

조국의 산수를 노래하고 평양의 풍치를 노래한 옛 시집들에서 보통강에 대한 시 한수 찾아보기 힘든것이 결코 우연하지 않다. 보통강은 문인들에게서 정서적인 시 한구절도 받을수 없었던 불행과 재난의 대명사였던것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조국을 해방하신 이듬해에 보통강개수공사의 첫삽을 뜨신 그때로부터 보통강반에는 인민을 위한 전변의 새 력사가 굽이치기 시작하였다.

보통강개수공사기념탑이 거연히 솟은 봉화산에서 아래를 굽어보면 두줄기의 아름다운 보통강이 한눈에 안겨온다. 그 두줄기가 합쳐지는 합수목이 있는 곳에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보통강개수공사의 첫삽을 뜨시였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잊지 못할 그날 흰 와이샤쯔에 검정조끼를 입으시고 뜻깊은 개수공사의 첫삽을 힘차게 박으시던 젊으신 우리 수령님의 거룩하신 모습이 우렷이 안겨와 격정을 금치 못해한다. 삽과 질통을 지고 공사장으로 떨쳐나온 시민들을 향하여 격동적인 격려사를 하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금시 들려오는듯싶어 경건한 마음으로 삼가 옷깃을 여미군 한다.

그날은 바로 지금으로부터 70년전인 주체35(1946)년 5월 21일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날 보통강개수공사 착공식에서 하신 격려사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보통강개수공사는 평양시민들이 애국적인 로동으로써 민주주의 새 조선건설에 기여하는 첫 사업이며 해방된 우리 인민이 처음으로 하는 대자연개조사업입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해방후 대자연개조의 첫삽을 몸소 뜨신 보통강개수공사는 우리 인민이 일제의 폭압우에 더해진 자연재해로 하여 가슴속깊이에 맺혀있던 원한과 슬픔의 응어리를 통채로 가시는 재생의 첫 자욱, 애국의 첫걸음이였다.

보통강개수공사기념탑에서 신록이 짙어가는 보통강의 정취를 한껏 느끼며 추억의 노를 젓는 우리에게 보통강혁명사적지 강사 김희숙동무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해방직후인 주체34(1945)년 12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통강기슭을 돌아보시면서 수행한 일군들에게 보통강반사람들의 한심한 생활형편에 대하여 자세히 들려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보통강개수공사를 진행하여 이 고장을 락원으로 만들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 공사를 발기하신데는 깊은 의도가 있었다. 물론 새 조선을 건설하는데서 해마다 범람하는 평양시의 큰물피해대책부터 세우는것이 중요하였다. 하지만 보통강개수공사는 단순히 큰물피해로부터 인민들의 생명재산을 보호하고 평양시민들의 생활을 안착시키자는데만 그 목적이 있지 않았다.

해방후 우리 나라에는 인재도 식량도 자금도 부족하였다. 이런 조건에서 새 민주조선을 성과적으로 건설하자면 전체 인민이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통강개수공사를 전체 조선인민을 하나로 묶어세우고 그들의 애국적열의와 창조적적극성을 힘있게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계기로 보시였던것이다.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원대한 대자연개조구상에 가슴끓이며 곧 보통강개수공사준비에 달라붙었다. 그러나 너무도 아름차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하였다. 일제놈들은 저들의 군사시설, 교통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15년을 목표로 공사를 벌려놓고 수많은 사람들을 내몰았지만 얼마 자리도 내지 못한채 패망하고말았다. 그만큼 보통강을 다스리는것은 참으로 방대한 어려운 공사였다.

주체35(1946)년 4월초 어느날 현지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설계도면도 료해하시고 공사를 진행해야 할 현장들도 돌아보신 다음 공사의 규모와 방향을 명확히 가르쳐주시였다.

그제서야 눈앞이 트이여 기뻐하는 일군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공사를 언제까지 끝낼수 있겠는가고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신심을 가지고 일제놈들은 15년을 계획했지만 3년동안에 끝내겠다고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3년도 길다고, 3년전에 큰물이 날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전체 평양시민들의 애국적로동으로 장마철전에 공사를 끝낼수 있도록 계획을 세울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공사를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당 및 인민정권기관앞에 나서는 과업을 뚜렷이 밝혀주시고 공사지휘부를 조직하는 등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준비사업에 기초하여 주체35(1946)년 5월 21일 보통강개수공사착공식에 참가하시여 력사적인 격려사를 하시고 보통강과 서포천이 합쳐지는 제일 어려운 작업장으로 가시여 개수공사의 첫삽을 뜨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땀을 흘리며 일하는 오늘이 정말 좋다고, 오늘 우리의 땀은 인민을 위해 흘리는 땀인데 얼마나 좋은 땀이요라고 하시며 잠시의 휴식도 없이 작업을 하시였다.

인민을 위해 흘리는 땀!

얼마나 가슴뜨거운 교시인가.

한삽한삽의 흙을 뜨실 때마다 흘러내리는 그이의 땀방울, 그 무수한 땀방울들에 의해 우리 민족이 대대로 살아온 금수강산이 더욱 풍치수려해지고 부강조국의 찬란한 미래가 더욱 아름답게 펼쳐지게 되리라는것을 아직은 누구도 알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통강개수공사장에 나오시여 몸소 첫삽을 뜨시였다는 소문은 온 평양시내에 퍼지였다.

평양시민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공사장으로 앞을 다투어 달려나왔다. 로동자, 농민은 더 말할것도 없고 사무원, 학자, 예술인들도 떨쳐나섰다. 각계각층 평양시민이 그렇게 굳게 뭉쳐 공동로동에 열성을 내여 떨쳐나선것은 처음 있은 일이였다. 그 앞장에는 언제나 새 조선의 당원들이 서있었다.

보통강개수공사가 끝나가고있던 어느날 새벽에 있은 일이였다. 갑자기 쏟아지는 무더기비로 제방의 한쪽구간이 무너질 위험에 처하게 되였다.

그때 한 청년당원은 제방뚝을 지켜내는 투쟁과정에 목숨까지 바치였다.

당시 공사지휘부에서는 이 뜻하지 않은 불상사가 당장 있게 될 보통강개수공사완공 경축대회의 밝은 분위기에 어두운 그늘이라도 던질가보아 소문도 못내게 하고 장례도 조용히 치르려고 했다.

이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크게 노하시여 인민에 대한 관점이 틀려먹었다고 하시면서 조용히 장례할것이 아니라 그의 영웅적희생에 대하여 신문에 크게 내고 장례도 평양시민장으로 하여 세상이 다 알게 하라고 하시였다.

그리하여 평양에서는 그 청년당원과 영결하는 성대한 시민장이 거행되고 당중앙위원회의 이름으로 낸 조문이 《정로》에 실리였다. 이것은 민족사에 있어보지 못한 우리 나라의 첫 인민장이였다.

어버이수령님의 거듭되는 현지지도와 그이의 두리에 하나로 굳게 뭉친 우리 인민의 이런 무궁무진한 힘에 의해 봉화산의 허리가 갈라져 강줄기가 돌려지고 수km의 뚝이 쌓아지게 되였다. 일부 사람들이 적어도 15년이 걸려야 한다고 하던 보통강개수공사는 예정기일보다 15일 앞당겨 단 55일동안에 완공되였다.

그해에 평양지구에서는 많은 무더기비가 내렸다. 그러나 수도시민들은 개수공사의 덕으로 피해를 전혀 입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위대한 수령님들의 은혜로운 손길아래 보통강은 자기의 모습을 얼마나 아름답게 변모시켜왔는가.

우리는 강변에 서있는 사연깊은 두그루의 나무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전후 이곳에는 나무라고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몸소 이곳에 나오시여 외롭게 서있는 이 두그루의 나무를 보시고 그것을 잘 보존관리하며 강가에 수양버들을 많이 심을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그리하여 두그루 나무는 오늘도 싱싱하게 자라고 강변에는 수양버들이 실실이 늘어져 보통강의 풍치를 한껏 돋구고있는것이다.

수삼나무, 넓은잎정향나무, 홍매가 인상적인 하나의 자연식물원을 련상케 하는 아름다운 어머니섬, 귀여운 아이들을 태운 고운 꽃배며 록음속에 산뜻하게 들어앉은 돌의자들…

과연 여기서 우리 젊은 세대들은 옛 토성랑의 눈물겨운 모습을 상상도 하지 못할것이다. 그러나 젊은 녀성들이 아기의 걸음마를 떼여주는 그 자리가 해방전 물란리에 귀여운 어린 자식을 잃은 불행한 어머니가 목놓아울던 자리일수도 있음을 우리 어찌 잊을수 있으랴.

보통강과 더불어 우리 인민이 겪어온 불행과 고통을 그 누구보다도 가슴깊이 새겨안으시고 그것을 가시여주시느라 헌신하신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이시기에 얼마나 감동깊은 사연들이 그 물결우에 소중히 비껴있는것인가.

주체49(1960)년 11월의 어느 일요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해농사차비에 쓸 자급비료생산의 불길을 지피시기 위하여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과 함께 보통강기슭에서 일판을 크게 벌리신적이 있었다. 휴식시간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해방후김정숙어머님과 함께 매일과 같이 개수공사장에 나오시여 일하시던 그 나날을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그러시는 위대한장군님의 가슴속에는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높이 받들어 보통강을 인민의 행복과 기쁨이 차넘치는 락원의 강으로 더욱 아름답게 꾸려가실 원대한 구상이 자리잡고있었다.

보통강기슭의 그 어느곳에나 위대한 수령님들의 크나큰 로고와 령도의 자욱이 무수히 새겨졌다. 그 로정을 따라 로동당시대의 기념비적건축물들이 우후죽순처럼 일떠서고 공원과 유원지들이 수많이 생겨났다.

전후시기 반당종파분자들이 남긴 오물을 쓸어버린 터전우에 멋쟁이 창광거리가 로동당시대의 걸작품으로 우뚝 솟아났다. 해방전에는 큰 거리라고는 없던 보통강기슭에 오늘은 천리마거리, 경흥거리, 봉화거리, 붉은거리와 같은 현대적거리들과 인민문화궁전, 평양체육관, 창광원과 빙상관, 청류관을 비롯한 기념비적건축물들이 즐비하게 일떠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은 너도나도 붓을 들어 보통강을 노래하고 작품에 담고있다.

우리는 보통강반의 아름다움을 화폭으로 옮기는 한 미술가를 만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담고담아도 다 담을수 없는 보통강의 아름다움입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보통강을 세상에 높이 자랑하고 빛내이는것은 공민적의무가 아니겠습니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생각하였다.

사람들이여, 보통강반의 아름다움뿐이 아닌 이 나라의 모든 천지개벽의 새 력사가 어버이수령님께서 몸소 대자연개조의 첫삽을 뜨신 70년전 5월 21일과 잇닿아있음을 부디 잊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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