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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풍토

탈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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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7-10 15:54 조회2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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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의 탈춤은 원시시대 사람들의 로동과 싸움을 비롯한 여러가지 생활계기들에서 창조되였다.
원시인들은 사냥할 때 무서운 동물의 탈을 쓰고 동물들을 위협하기도 하고 새나 순한 동물의 탈이나 잡으려는 대상과 같은 모양의 탈을 쓰고 대상에 접근하기도 하였다. 싸움할 때에는 적을 놀래우고 위협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탈을 쓰기도 하였다.
점차 사람들은 탈을 가지고 로동과 싸움을 비롯한 여러가지 생활을 예술에 담아 표현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은 탈놀이(탈춤놀이)라고 불렀다.
탈은 종이와 나무, 마포, 비단, 바가지 등 여러가지 재료로 만들었고 털이나 색종이로 장식했다. 얼굴에 쓰는 물건 혹은 가면이라고도 했다.
원시적인 수렵무용은 거의 다 동물들의 가죽을 쓰고 그 동작을 흉내내여 춘 탈춤이였다.
탈춤은 삼국시기에 와서 일정한 예술적면모를 갖추게 되였다. 특히 고구려(B.C. 277년 ― A.D. 668년)에서는 탈춤이 《기악무》라는 독자적인 탈춤엮음형식으로 발전되여 널리 추어졌다. 그 이후시기의 탈춤들은 인민적인 극형식과 년중행사, 각 지방의 민속놀이들과 결합되면서 다양한 탈춤놀이극으로 발전하였다.
탈은 다양하게 발전하여 일본에까지 전하여졌다. 당시 일본에서 사용한 탈이 현재까지도 일본 법륭사(나라현)에 보존되여있다.
탈은 탈놀이와 함께 고려(918―1392)시기에 이어 조선봉건왕조(1392―1910)시기에 더욱 발전하였다. 고려시기의 《산대잡극》과 그로부터 여러 갈래로 퍼져 발전한 황해도지방의 탈놀이, 조선남해안지방의 오광대놀이 등이 그 실례로 된다. 특히 황해도지방의 봉산탈춤, 강령탈춤 등은 조선의 대표적인 탈춤으로 알려져있다.
탈춤은 지방에 따라 여러가지로 나눌수 있지만 그 내용은 주로 인민들의 농경생활과 결부되여있는것이거나 봉건적착취계급들에 대한 증오와 조소를 담은것이였다. 지난 시기의 탈춤들은 시대적 및 계급적제한성을 가지고있으나 당시 조선인민의 생활감정과 지향을 반영하였으며 그 형식이 다양하고 춤동작이 풍부한것으로 하여 민족무용유산의 중요한 구성부분을 이루고있다.
그가운데서도 봉산탈춤은 황해북도 봉산지방에서 전해오는 민속무용유산의 하나로서 가장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고 그 주제사상과 예술적측면에서 진보적이고 인민적인것으로 해서 오늘도 전해오고있다.
지난날 봉산탈춤은 년중 한번 진행되였는데 탈군들은 《탈춤행사》를 성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봉산탈은 종이를 여러겹으로 붙여 만든것인데 저녁에 우등불을 사방에 피우고 그것을 조명으로 하여 탈을 쓰고 춤을 추었다. 탈군들은 춤이 끝나면 탈을 우등불에 던져 모두 태워버리고 다음해에는 다시 탈을 만들어 리용하였다.
봉산탈군들은 대를 물려오며 진행하는 탈제작을 대단히 신성한것으로 여기면서 인적이 없는 깊은 산속에서 탈을 만들었다고 한다.
봉산탈춤의 반주는 피리, 저대, 장고, 북 등이다.
오랜세월 인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전해져온 봉산탈춤은 오늘날 시대의 요구와 인민들의 정서에 맞게 개화발전하고있다.
지난날 야외에서만 하던 봉산탈춤이 오늘은 극장무대에까지 올라 인민들에게 웃음과 기쁨을 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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