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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상은 신랑신부의 결혼을 축하하여 차리는 음식상이다. 큰상이라고 하는데 큰상은 축하의 뜻으로 차리는 가장 경사스럽고 화려한 상차림의 대명사였다.
잔치상은 신랑과 신부가 각기 따로 받는 경우와 함께 받는 경우가 있었다. 잔치상은 주로 신랑은 신부집에서, 신부는 신랑집에서 각기 따로 받는 경우가 많았고 신랑신부가 함께 받는 풍습은 근대에 와서 생긴것이다.
옛날부터 잔치상에 술, 고기 등이 놓이는것이 풍습으로 되여왔다.
지난날의 잔치상은 일정한 규범에 따라 여러가지 음식으로 잘 차리는것이 하나의 풍조로 격식화되여있었다.
《세종실록》에는 《전례대로 넉줄로 잔치상을 놓아 정해진 법을 따르는것이 좋겠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잔치상을 일정한 방식에 따라 차리는것이 이미 15세기이전부터 내려오는 하나의 규범화된 관습이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잔치상은 일반적으로 맨 앞줄에는 여러가지 과일류(생과류, 건과류)를 차려놓고 둘째줄과 셋째줄에는 편(떡), 전과류, 포, 숙육류(삶은 고기), 전, 구이 등 각종 음식을 보기 좋게 배렬하였다. 그리고 주인공이 앉은 앞에는 그가 먹을수 있도록 장국상이 차려졌으며 큰상 량옆은 색떡과 꽃나무로 화려하게 장식되였다. 음식물을 담은 식기류는 제상차림과는 달리 굽낮은 큰 접시나 대합이 쓰이였다.
큰상차림에서 특별히 눈에 띄우는것은 색떡이였다. 색떡은 흰쌀로 만든 절편에 여러가지 물감을 들여서 꽃잎, 나무잎모양으로 빚어서 나무에 꽂아 큰상 량옆에 담아놓았다. 색떡은 보통 다리가 붙은 놋그릇에 담았고 절편은 큰 덩어리채로 높이 쌓아올렸다.
평안도지방에서는 가로세로 20cm정도의 두꺼운 절편을 만들어 굽이 높은 큰 그릇에 수북하게 담고 꽃모양으로 만든 몇개의 떡을 올려놓는 풍습이 있었다.
큰상차림은 지방과 빈부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19세기 평양지방의 중류급혼인잔치상에는 교자상에 20가지이상의 음식을 차려놓았다.
혼인잔치상은 기쁜 날에 차리는 상이므로 될수록 보기 좋으면서도 화려하게 차리는데 커다란 관심을 돌리였다.
지난날 부유한 가정에서 차리는 큰상에는 랑비와 허례허식이 적지 않게 반영되여있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밥 한그룻에 맹물을 놓고 대사를 치르는것이 례상사였다.
오늘날 가정들에서 차리는 결혼잔치상은 지난 시기의 격식화된 상차림보다고 신랑신부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사회주의적생활양식에 맞게 검소하게 차리거나 또는 큰상차림자체를 없애고 축하연에 필요한 음식을 간소하게 차리는것으로 일반화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