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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4-07 13:01
독특한 고려청자제작술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949   추천 : 0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고려청자기와 더불어 그 제작술도 우리 민족이 자랑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되고있다.

비취색을 띠는 고려청자기는 종류가 풍부하고 색과 무늬, 형태가 독특하며 예술성이 높은것으로 하여 세계도자공예력사에서 특출한 자리를 차지하고있다.

고려청자기의 색은 푸른색 혹은 자연속에서 쉽게 찾아보게 되는 색채와 같지 않은 신비로운 색을 띠고있다. 일명 비색자기라고도 하는 고려청자기색은 예로부터 밝고 선명하고 은근한것을 좋아하는 우리 인민의 생활감정과 취미, 기호를 반영하고있는 색채라고 할수 있다.

고려청자기의 장식무늬들은 나라의 산과 들 어디서나 볼수 있는 동식물 등이 단독무늬, 련속무늬로 형상되여있다. 자기표면에 무늬를 새기고 그것을 여러가지 색흙으로 메꾼 다음 유약을 발라서 구워내는 독특하면서도 고유한 상감장식기법을 도입하여 무늬와 형태, 색이 하나의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청자기의 가지수가 늘어나고 그 형태도 다양한 상형자기로 발전되여 고려청자기의 공예적가치가 훨씬 높아졌다.

고려청자제작술은 조선로동당의 민족유산보호정책에 의하여 국가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되였다.

 

 

귀중한 민족문화유산 고려청자기와 우치선

 

12세기에 전성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던 고려청자의 700여년의 깊은 잠을 깨우는데 성공하여 현대고려청자의 대가로 명성이 자자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만수대창작사 창작가였던 우치선이다.

 

 

우치선(1919.11.2-2003.11.8)은 18살나던 1937년에 서울에서 열린 전국도예전에 자기가 만든 첫 작품을 내놓은 때로부터 50여년을 말그대로 흙, 불과 함께 살며 조상전례의 고려청자기비밀을 찾아내기 위하여 심신을 다 바치였다.

해방전에 그는 송림도자기공장과 개성고려자기공장에서 도자기를 만들었으며 1945년 9월부터 송림도자기공장 기술지도원, 공장장으로 그후 남포도자기공장 공장장으로 일하였다.

그는 1955년부터 선교도자기공장 준비실장으로 일하였는데 이때부터 고려청자기에 대한 연구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고려청자기의 넋을 되살리기 위한 고심어린 탐구와 노력끝에 그는 1964년에 첫 작품으로 《청자국화무늬단지》를 내놓았다. 그후 《흐름유과실반》(1966년), 《감부각무늬꽃병》(1971년), 《해바라기상감꽃병》(1978년), 《평양풍경무늬꽃병》(1980년) 등 이름있는 작품들을 련이어 창작하여 전람회들에 출품하였다.

우치선은 1981년부터 만수대창작사 도자기창작단에서 활동하면서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훌륭한 도자공예작품들을 수많이 창작하였다.

주체80(1991)년 2월 11일 만수대창작사를 찾으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축원의 꽃다발을 드리는 그를 보시고 고려청자기를 만드는 대가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이시기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로는 《만병초무늬청자꽃병》(1982년), 《함박꽃무늬청자꽃병》(1984년), 《구름학무늬호로주전자》(1988년), 《구름학무늬반상기》(1997년) 등이 있다. 이외에도 국내, 국외 미술전람회들에 수백여점의 작품을 창작전시하였다.

 

 

우치선선생의 작품들

 

그의 작품들은 은근하면서도 깊이 있고 아름다운 색조와 세련된 형태, 독특한 장식기법 등으로 하여 우리 나라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 진귀한 보물로 알려져있다.

《고려청자기의 깊이있고 현숙한 색갈과 다양한 형태는 사람들을 완전히 매혹시킨다.》, 《뛰여난 고려청자상감기술에는 놀라지 않을수 없다.》, 《신비한 조선의 고려청자기, 어떻게 문양을 새겼기에 은근하고 상쾌해보이는가.》…

이것은 수십년전 일본 야마구찌현 시모노세끼시에서 열린 고려청자기전시회에서 수많은 일본사람들과 재일동포들이 우치선이 출품한 고려청자기들을 보며 터친 찬탄의 목소리이다.

일본 오사까시의회는 그의 작품들에 어찌나 매혹되였던지 그에게 오사까명예시민증을 수여한적도 있었다.

우치선의 남다른 재능과 공로를 귀중히 여기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가 사소한 불편도없이 창작활동에 전심할수 있도록 온갖 은정과 배려를 다 돌려주시였으며 그에게 김일성상계관인(1989년), 인민예술가(1984년)의 값높은 칭호도 안겨주시였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훌륭한 도예가로 성장하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지금 만수대창작사 도자기창작단에서는 우치선의 아들 우철룡, 딸 우복단, 손녀 우영란이 고려청자기창작에 온 넋을 바쳐가고있다.

 

 

우철룡이 평양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 우치선과 함께 만수대창작사 도자기창작단에서 일하게 되였을 때 당시 일부 사람들은 아무렴 자식이 아버지만 하겠는가고 머리를 기웃거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철룡은 늘 새롭고 기발한 착상으로 사람들을 놀래우군 하였다.

고려청자기의 옛 모습을 복원하는데 만족한것이 아니라 시대적미감에 맞게 새롭게 창작할 일념으로 탐구와 열정의 낮과 밤을 이어갔다.

그가 창작한 《송학장식투각꽃병》을 비롯한 고려청자기들은 지난 시기 남조선의 제주도에서 열린 북남통일미술전에서 형상기법이 독특한것으로 하여 이목을 끌기도 하였다.

현재 조선미술박물관에는 우철룡이 고려청자의 기법들을 살리면서 현대적미감에 맞게 독특하게 창작한 《학, 구름무늬상감청자꽃병》, 《목란꽃상감청자꽃병》, 《꽃과 새상감청자꽃병》 등 10여점의 도자공예작품들이 국보로 소장되여있다.

우치선의 딸 우복단 역시 재능이 뛰여난 도자기창작가이다.

녀성적인 섬세성으로 지난 기간 그의 창작품들은 여러 국제도자기박람회들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으며 어느 해인가는 도자공예 《잉어무늬투각장식꽃병》을 박람회에 출품하여 최고상인 최우수창작상을 수여받았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현명한 령도와 사랑의 품에서 고려청자기의 넋과 제조방법은 나날이 더욱 발전풍부화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