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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5-09 15:51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1,421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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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함흥인 두희자는 1963 22살에 나서자란 고향과 어린 동생들을 남겨두고 남편따라 낯설은 이국에 오게 되였다. 고향을 그리는 그는 공민사업과 함께 조국지원도 많이 하여 국기훈장도 여러번 수여받았다.


인민페15만원을 지원한적도 있었다. 집 주인이 들여오는 커피를 마시면서 지나온 일들을 이야기하는데 텔레비죤에서 조국에서 지구관측위성을 발사한다는 소식이 전헤졌다.모두들 조용히 들었다. 《저 박근혜가 왜 저렇게 반대하는거지, 통보를 하고 하는건데 위성이야 발사할 권리가 있지 않아요.》하고 리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주인이 말하니 동주봉이 말을 받았다. 《응당 민족의 자랑으로 기뻐하여야 하는데 저렇게 반대하여 미쳐날뛰니 정신이 나간 사람이 아닙니까. 최근에 인테네트를 보니 중국시민 80%가 조선의 핵무기를 지지한다고 하였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 가지고 온 선물과 잡지《금수강산》, 《백두-한나》를 주고 일어서니 주인이 식사하고 가라고 붙잡았지만 시간이 없어 사절하고 두희자와 작별인사를  나누는데 그의 두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였다. 우리도 기분이 언짢았다.


주인이 밖에까지 나와 우리를 바래워주었다. 우리 공민 송병헌, 리보비로병들도 소가툰에 사는데 오늘은 시간이 촉박하여 점심때가 지나서 만륭에 도착하였다.


만륭은 심양교구에서 조선족들이 제일 많이 모여 사는 마을이여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 마을에 우리공민이 꾸린 식당이 있어 곧장 그리로 갔다. 주방에서 일하던 우리 공민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하였다. 식사후 우리는 곧 서탑에 살고있는 우리 공민 김룡수박사의 집으로 갔다.


원래 김룡수박사는 내가 사는 명렴가에서 살았는데 몇년전부터 서탑 딸집에 와있는것이다. 우리를 맞이하는 김룡수박사는 바쁜데 이렇게 찾아주어서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하였다. 걷기가 좀 불편하지만 름름한 그 모습과 여유있는 행동거지는 로의학자의 풍채를 엿볼수가 있었다. 집이 널찍하고 밝은데 알뜰히 거둔 집안은 딸의 정결한 솜씨와 효심을 말하여 주는듯하다. 학습조때부터 공민사업에 열성적으로 참가하던 분인데 몇달전 부인을 잃고는 몸이 불편하여 학습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의 부인 박영화은 조국해방전쟁시기 전선에서 간호장으로 있었다.) 아바이의 손자가 들여온 커피를 마시면서 그동안 궁금한 일들을 이야기하는데 아바이가 조국에서 위성발사소식을 아는가고 묻는다.


우리도 방금 들었다고 알려주었다. 《박근혜가 핵무기를 걸고들면서 온 세계를 싸다니며 우리를 비방중상하는데 우리가 나라를 보위하기 위해 핵무기를 만든것이지 남조선인민들에게 들씌우려고 만든게 아니요. 해마다 미국놈하고 군사연습을 하는데 남조선은 지금 핵무기창고가 되였소. 우리가 핵무기가 없으면 어떻게 평화를 유지 하겠소. 너들 군사연습 그만두면 우리도 핵시험을 중지한다고 해도 동의하지 않는게요》 아바이는 90을 넘긴 고령이지만 주변정세에 관심이 깊다.류춘화가 아바이를 보면서 말하였다.《아바이 고향이 어디십니까?, 《김정숙군 자서리요. 49년 친척을 따라서 강건너왔지, 그때 나이 스물네살이지. 참 오랜 세월 흘렀소.》못잊을 고향과 젊은 시절의 추억에 잠긴듯 잠시 말이 없었다. 우리도 침묵을 지켰다.  


길림의학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주임의사,고급연구원으로 수십년간 의학부문에 종사하면서 의학론문, 저서들도 발표하고 국제학술토론회에도 참가한 의학에 조예가 깊은 분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김룡수아바이는 조국에서 필요된다고 생각하는 전통의학자료들을 정리하여 보내군하였다. 그는 조국으로부터 의학박사 칭호까지 수여받았다.  (다음호에 계속)